2007-12-21
김용선
눈으로 프로그램한다.

"프로그램신가요?"
"얼마나 하셨습니까?"
"언제 처음 하셨습니까?"
"예?"
"연세가?"
"어떻게 여태까지 코딩을 하고 계십니까?"
어딜가나 내가 듣는 질문이다.
대답 또한 똑같다.
"예 프로그램합니다."
"20년 넘습니다."
"70년대 초."
"쉰 여섯입니다."
"나이 먹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러고 나면 상대방이 가지는 의문은 또 생기는 가보다.
프로그램을 제대로 하기는 하는가? 연봉은 얼마나 받나?
사용하는 언어나 툴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까지 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고 별로 진지한 대답도 하고 싶지는 않다.
프로그래머들이라면 대충 어림으로 짐작을 할테니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도 묻지 않는 대답을 하는 것은 "이젠 머리로 하지 못하고 눈으로 프로그램 합니다." 한다.
정말 이젠 복잡하고 깊은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아지는 것은 분명히 나이탓 일거라고 생각한다.
오후보다는 오전 시간이 더 머리를 쓰기에 좋고 능률이 좋아서 복잡한 분석은 가급적 오전에 한다.
눈으로 프로그램하는 것은 피곤하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하는 모양이다.
눈으로, 즉, 전에 한거, 남이 한 거 베끼고, 대충 어림으로 한번 돌려보고 어림으로 수정해봐서 맞으면 다행.
안되면 조건 바꿔 또 해보고, 또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인터넷 검색하고 어디쯤 뒤지면 뭐나오고 어느 책 뒤지면 뭐 나오고. 누구 한테 전화하면 뭘 알아내고.
이쯤하면 왠만한 프로그램 다 한다.
이걸 나는 "통박"이라고 자주 말한다.
통박은 또 눈썰미라고 말한다.
사전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 대충 뜻이 맞을 게다.
스스로 변호하고 자위하는 것은 이 통박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고 이것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쌓아진 실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통박은 나이먹어서 떨어진 지구력을 보완하는 아주 좋은 대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얼른 답을 생각해내고 연구 낼 수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무엇이 이것일 것이라고 하는 느낌이 있고 이 느낌은 결국 답으로 증명되는 체험을 반복해 간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 되어간다.
이제 노령화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다.
나는 노령축에도 못끼고 젊은이 축에도 못끼면서 사실상의 소외계층이다.
노동시장에서만큼은 분명히 소외계층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연금지급도 못받으면서 그 동안 벌어놓은 것이나 가지고 곶감꼬지 빼먹둣이 놀고 먹어야 하는 세대가 되어 버린 세대다.
이후 내가 정작 노령세대가 되었다 해도 자손들로 부터 부양을 받을 수 있을 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
오직 많이 벌어서 저축해 두었다가 쓰던지 건강하고 능력이 있어서 늙도록 벌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늙도록 벌려면 체력으로는 대책이 없다.
두뇌로도 않된다.
단지 경험이 중요한 파워일 뿐이다.
해서 일생을 통해서 가져진 경험을 정리하고 언제든지 꺼내 쓸수 있는 도구로 갈고 닦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누가 알아 주어야 써먹는다.
나를 알리려면 광고를 해야 하지만 잘난체 하는 사람에게 워낙 속아 본 경험이 많은 세상이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알려야 한다.
세상은 나를 알아주어야 한다.
50대의, 경험을 통해 쌓여진 능력(통박)을 인정 해 주어야 한다.
내가 눈으로 프로그램을 한다해도 비웃지 말아야 한다.
내가 날코딩을 한다고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나도 젊은이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내가 잘 않되는 것이 저들의 손에서 훌륭하게 신속하게 처리 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과 형제처럼 친구처럼 한 프로젝트를 해 가는 걸 보면서
"내가 아직 꼰대는 아니구나" 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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