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게시판
2015-04-08 Hit : 765
김용선
뚝섬얘기(신문기사에서)
먼지에 갇힌 도시에 봄비 내린다.
바람이 분다.
모든 생명이 제 몸을 흔들어 깨우는 시간이다.
봄은 뚝섬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조종하(74), 김동근(67), 유광복(68) 등 뚝섬 토박이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뚝섬을 떠나본 적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새 봄을 맞아 '살아온 뚝섬'과 '살아갈 뚝섬'을 '정겨운 마을'로 만들기 위해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뚝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뚝섬 토박이'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천천히 얘기를 듣다보니 뚝섬사람만의 유별난 정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뚝섬이란 이름은 임금이 행차를 알리는 둑기를 세웠다해 '뚝기를 세운 섬'에서 연유한다.
이곳은 조선초 말 목장, 군대의 열무장, 임금의 사냥터 등으로 쓰였다.
조선시대 살곶이벌, 전교(화살을 쏘아 사냥하던 곳)로도 불렸던 성수동 일대는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 평야를 이뤘다.
일종의 삼각주다.
지형적으로도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 모양이다.

뚝기를 세운 장소는 지금의 성수동 천주교 성당터다.
군대의 무예를 수련하고, 임금이 열무하던 검열대 자리로 예전에 '성덕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여러 기록에는 태종과 세종이 이곳을 자주 찾아 무예와 사냥, 군사 훈련을 했다고 나온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군주는 무엇을 해도 스토리텔링이 되는 모양이다.
하여튼 성덕정터, 뚝기를 세웠던 자리는 해방 이후 경기 고양군 뚝도면 사무소,
서울 성동구로 편입된 이후엔 뚝도 출장소로 쓰였다가 지난 66년부터 천주교 성당이 들어섰다.

천주교 성당 마당에는 우람하고 거창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느티나무는 도로변에서 보면 축대 위에 있고, 느티나무 터는 성당 본채의 마당을 이룬다.
아직 봄녘의 느티나무는 몸살을 하는 듯 봄비를 맞으며 텅빈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동편 나무 아래 하얀 성모 마리아상이 그윽하다. 느티나무 가지는 마리아상 위에 아우라처럼 펼쳐져 있다.
곧 푸른 잎이 돋고나면 마리아상에는 그늘이 드리워질 것이다.
두 나무의 수령은 300여년. 아마도 형제인 듯 싶다.
나무 둘레는 450cm, 높이는 15m 내외다.
줄기와 몸통 곳곳에 시멘트를 바른 수술 자욱이 드러나 나무의 범상치 않은 내력을 일러준다.

"어릴 적 강가에서 수영하다 지치면 이곳에 와서 나무를 타고 놀았어.
밤에는 나무 밑둥에서 푸른 인광이 나와 도깨비불처럼 멀리서도 환했어.
어른들은 멍석을 펼치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어. 동네에서 제일 좋은 놀이터였지."
맏형인 조종하씨 얘기다.
조씨는 "본래 나무는 네그루였는데 성당을 짓느라 두 그루가 잘렸다"며 "지금의 성당 본채가 들어선 자리"라고 알려줬다.

뚝섬에 제방을 쌓기 전 이 일대는 매번 홍수에 휩쓸렸다.
이에 옛 뚝섬 사람들이 이곳에 석축을 쌓고 흙을 메꿔 지대를 높게 만들었다.
이를 '돈대'라고 부른다.
성당의 본채가 들어선 자리를 포함, 100여평 남짓한 돈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느티나무가 있는 자리, 즉 절반 정도만 남았다.
돈대는 평지에서 2.5m 정도 높게 올라가 있어 성당 입구보다 일층 정도 높다.

수령이 300년, 높이 15m 내외의 뚝섬 느티나무는 홍수 때마다 수많은 목숨을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뚝섬 이야기를 정리하느라 분주한 박인범 성수1동장(왼쪽), 토박이 조종하씨(가운데), 김동근씨가
어릴적 느티나무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헌데 토박이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가공할만하다.
바로 성당 지을 때 벌목작업을 했던 사람 셋이 작업 후 일주일 지나 모두 횡액으로 급사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나무 몸통에서 구렁이가 나왔는데 함께 잘려서 그렇다고 어른들이 말하는 걸 들었다"고 들려줬다.
커다란 바위나 나무를 훼손해서 횡액을 당했다는 얘기는 늘 같은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다.
전국 어느 마을에 가도 꼭있을 법한 얘기다.
그런 얘기는 항상 실화이면서 허구라는 학자도 있다.
자연의 정령을 해친 것에 대한 집단적ㆍ정신적 처벌의 일종으로 해석한다.
우리들의 DNA속에 토템의 뿌리가 담겨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뚝섬 느티나무는 진정 정령이 깃들일 법 하다.
1925년 대홍수로 뚝섬 전체가 물에 잠겼을 당시 느티나무 가장자리에 쳐놓은 새끼줄을 잡고 물에 떠내려오던 사람들이
나무로 올라와 목숨을 건졌다해서 더욱 영험한 나무다.
그 때의 장마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토박이 세분의 말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당연히 그들이 겪지 않았는데도 말끝마다 '을축년 장마'를 언급한다.
대화 도중 반복적으로 '을축년 장마 때''를 거론하는 걸로 봐서 토박이들에게 아직까지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듯 하다.
그 트라우마를 딛고 이들이 지금껏 마을의 촌로로 살아가는데는 다 느티나무 덕으로 여겨질 정도다.
그렇게 느티나무는 평상시에는 마을 쉼터로, 홍수 때는 인명을 구조하며 오랫동안 마을 수호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느티나무는 창덕궁 개축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베어질 뻔 했다.
목재가 부족해 뚝섬 느티나무도 징발하라는 흥선의 명령이 있었지만 뚝섬 주민들은 홍수 때마다 수많은 목숨을 건진 나무를 벨 수 없다며 애끓게 호소한 덕분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뚝섬 토박이들에게는 돈대와 느티나무는 그저 그런 임시 대피소가 아니다.
나무와 사람이 서로 생명의 연대를 이루며 삶과 영혼을 나누는 공동체인 셈이다.
"나무 몸통 가운데는 구멍이 뚫여 두어명이 들어갈 공간이 있었지.
그곳에 들어가 놀던 생각이 나. 지금도 느티나무가 우릴 지켜주고 있지." 막내 김동근씨 얘기다.

을축년 홍수 이후 1927∼1938년까지 12년간 뚝섬 전 구간에 걸쳐 5710m 의 제방이 쌓아지고
홍수 시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한 6개의 수문이 설치된 뒤로 느티나무는 더 이상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느티나무 주변에 커다란 곡물시장이 생기고. 수많은 물류창고들이 들어섰다.
뚝섬은 물류 유통의 중심지 혹은 여름철 서울 시민의 휴양지로 바뀌었다.

돈대와 갑문으로 이어지는 길, 세 토박이의 추억도 새록 새록하다.
그래도 여전히 마을을 지켜가고 있는 세 토박이의 얘기는 신나고 정겹다.
뚝섬 사람들의 음식인 '국말이 떡'이며 '뚝섬 갈비'(뚝섬에서 나는 무, 배추 등 야채를 일컫는 말)를 얘기할 때는
어릴 적 느티나무에서 놀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하다.
최근엔 고재득 성동구청장을 비롯, 지자체가 뚝섬 문화 찾기에 나서서 주목된다.
박인범 성수1동장도 토박이들과 '뚝섬 이야기'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뚝섬은 과거 물류중심지에서 유원지로, 최근엔 산업발상지로 변모해왔다.
그 안에는 무수한 유적과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봄녘에서 사람과 나무가 맺은 특별한 인연을 만나 생명의 뜻을 새겨본다.
아직 다하지 못한 뚝섬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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