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리교회는

감리회 신앙
감리교회의 신앙은 1930년 발표한 기독교 조선감리회의 교리적 선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1997년 새롭게 신앙고백을 하고, 이 사회에 대한 봉사와 책임의지를 발표한 사회신경 역시 현대적 의의를 담아 발표하였다.

선교사역
한국감리교회는 미국 감리회를 통해 전래되어 교파분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일 조직의 교회로 성장하였다. 한반도 지역 뿐만 아니라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영적인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해외선교를 통해 다른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교육사역
감리교회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과 출판 등 지식문화를 넓히는데 막대한 지원을 하였다. 감리교 계통 신학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출판문화를 통해 사회 이념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등 일반 및 사회 교육의 지도적 원천이 되었다.

사회복지사역
감리교회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환자, 장애우를 위한 끊임없는 사회봉사 및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선교 초기부터 여성의 지위에 대한 관심과 병원의 설립, 사회봉사 단체를 형성함으로써 복지활동에 힘쓰는 등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한다.

오늘의 신앙
교회력과 금주의 말씀을 따라 신앙의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며 동참하는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감리교 신앙의 강조점 
  감리교의 신앙전통은 기독교의 참된 구원의 진리와 성서적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서적인 구원의 길을 살아가는 것이며, 믿음과 사랑을 통해 성화와 완전으로 나아가는 실천적 제자의 도리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 칭의, 성화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충만하고 온전한 구원은 타락한 인간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와 새 창조의 경륜은 개인적 성화, 사회적 성화, 그리고 창조의 완성을 포함한다.

1) 선행적 은혜
  우리는 모든 인간 속에 이미 선행(先行)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음을 믿는다. 선행적 은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구원의 첫 열망과 소원을 일으킨다. 이 선행적 은혜 때문에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만민에게 값없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선행적 은혜는 구원의 여명이며 준비로서 복음에 의한 회개와 구원의 은혜로 나아가야 한다.

2) 칭의와 확증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칭의 교리를 구원 이해의 기초로 받아들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해 죄를 용서하시고, 회개하는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은혜를 말한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 관계의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통해 새로운 창조를 가져 온다. 우리는 회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령의 확증을 얻는다. 이 영적 체험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주체가 되지만 우리의 응답을 포함한다. 이와 같은 중생과 회심은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3) 성화와 완전
  회개와 칭의를 통해 죄사함 받은 우리는 계속해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목표로 성장하게 된다. 성화의 목표인 완전은 인간의 본래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의미에서의 완전이다. 또한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로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시는 순결하고 완전한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 죄와 정욕의 권세는 서서히 정복된다.
  성화의 과정에 있는 신자들은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죄에 대해 더욱 예민해지며,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화의 은혜에 응답함으로써 구원의 역사에 동참한다.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능동적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지만, 완전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다시 죄로 인한 타락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이 세상에서 순간적인 완전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소망과 기대를 통해 목표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4) 믿음과 선행
  믿음은 구원의 출발로서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에서 비롯되며 믿음을 증명하는 선행(善行)은 성화의 과정 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작용한다.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성령의 능력을 통해 맺는 열매들이다. 그 열매들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완전을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훈련과 실천을 통해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5) 은혜의 수단과 교회
  감리교인들은 삶에 있어서 훈련과 성숙을 믿는다. 복음적인 신앙생활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이에 응답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 공동체의 책임적인 삶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로서 세상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사명을 가진다. 성도들의 삶에는 예배를 통한 말씀과 성례전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주는 여러 종류의 은혜의 수단들이 있다. 감리교회의 원래 형태는 경건을 실천하는 속회와 같은 모임들을 통해 사랑의 돌봄과 양육을 목표하는 공동체이다. 거기서 예배와 기도회, 절제와 금욕, 선행과 자비의 행위 등 개인과 사회를 성화시키는 복음적 삶의 훈련이 이루어진다.

6) 선교와 봉사
  구원은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성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개인적 경건은 사회적인 봉사와 참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동참의 행위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은혜에 의존한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능력에 의해 세상을 향한 선교와 봉사를 위해 힘쓴다. 우리는 그 역사에 동참하는 책임을 가진다. 우리는 사랑과 자비의 섬김을 통해 이 세상에서 평화와 정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해야 한다.

7)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
  감리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창조의 완성을 목표로 하여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세상에 선포된 복음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가 죄를 이기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경륜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장래에 영광 중에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모든 신자들의 몸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가져 오는 세상의 종말을 말한다.
  성화의 삶은 인간과 사회에서 출발하여 자연과 창조세계 전체에까지 미친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은 결국 만물의 회복과 갱신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새 창조의 원동력은 오늘날 죄의 타락의 굴레 아래 신음하고 있는 우주 만물에게 희망을 주며, 우리로 하여금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의 총체적 구원의 경륜에 참여하게 한다.


2.서도중앙감리교회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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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의 역사문화적 가치

지정번호 : 인천문화재자료 제14호
지정연도 : 1997년 7월 14일
소      장 : 기독교감리회 유지재단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서도면 주문도리 718외 2필지
시      대 : 일제강점기
분      류 : 목조문화재(기타)


 

 

(옛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도 새벽기도회등 집회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7년 7월 14일 인천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1923년에 교인들의 건축헌금으로 지어진 한옥으로, 건축형식은 2고주 5량가의 가구구조를 가진 팔작지붕에 홑처마집이다.
평면 구성은 중세 초기 서양교회 형식이나 매우 단순하며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그리고 전면 중앙 강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단 뒤에는 사제석(司祭席)이 마련되어 있다.

건축 기술이나 미적으로 평가한다면 그 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한국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교회를 건축했다는 데 큰 의미를 지닌다. 1902년 천주교 전도사 윤정일이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강화도 주문도리에 들어와 1923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한국 최초의 교회인 주문교회를 지었습니다.
(1978년 주문교회에서 서도 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그러나 이미 많은 외국의 선교사님들이 100년전 부터 한국에 들어오셨고 전도사역을 시작하셨지요.
그러나 번듯한 예배당은 없었고 대신 전도한 교인의 집을 빌려 교회로 사용한 경우가 참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서도교회 전 가정집을 빌려 교회로 사용한 예가 많이 있었기에 서도 중앙교회를 최초의 교회라고는 공식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선교사가 먼저 교회를 세웠는지는 자료의 미약성으로 인해 확실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강화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는데요.
1866년 고종 3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프랑스 함대가 정족 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철수할 때까지 1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871년 신미 양요 때에는 미국 함대가 초지진, 덕진진과 광성보를 차례로 함락시켰습니다.
이처럼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 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 전진적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따라서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3곳에 이릅니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입니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2월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같은 해 7월에 한옥 예배당으로 완공되었으며,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현재 대한 기독교 감리회 소속입니다.
이 교회 건물은 건축 기술이 뛰어나다거나 미적인 가치가 크지는 않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목조 건물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옛 건물 뒤 윗쪽으로 현대식 새 교회건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