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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9
김용선
양키물건장사
(아직도 우리집에 이런저런 미제들이 있다. 그 똥도 좋다는....)

60년대 우리 집 문간방에는 영섭이네가 살았다.
영섭이는 나보다 한 학년이 위였고 나보다는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영섭이 아버지는 몸이 많이 아파 방에 누워서 지냈고 영섭이 엄마가 밖으로 나 다니면서 장사를 해서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영섭이 엄마는 양키물건 장사를 했다.
미제는 똥도 좋다는 시대였으니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미제 물품장사는 꽤 짭짤한 잇속이 있었다.
미군들이 외출을 할 때면 군것질걸이나 음료, 간단한 화장품 또는 의약품들을 들고 나오는데 이런 물건을 사서 팔면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에 부평에는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이 분들을 양키물건 장사라고 했다.
일용잡화를 취급하는 것은 대개 여자들이 했고 남자들은 아예 전문적으로 큰 물건들을 취급했는데 사실 도둑질을 한 셈이다.
주한 미군들도 본국에서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돈 때문에 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양키물건 장사들과 연관되어서 PX물건을 사다 넘겨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양키물건을 거래하는 것은 물건을 사는 것과 이동하고 파는 3단계를 거치는데 미군 MP나 경찰을 피해서 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부피가 크기 않은 일용잡화 등은 아주머니들이 천으로 감싸 몸에 두르고 한복을 입어 겉으로 표가 덜나게 해야 했다.
들은 말로는 24개짜리 캔 맥주 한 박스도 감쪽같이 몸에 두르고 이동한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영섭이 엄마도 온 몸이 멍투성이라고 한탄 하던 소릴 듣기도 했다.
미군부대에서 미군들에 의해 입수된 물건은 이렇게 서울로 아주머니들에 의해 이동되고 두배값으로 팔렸다.
당시 얼마나 많은 양키물건이 팔려 나갔던지 미국 본토에서는 주한 미군의 총 소비량의 7배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도둑도 많이 맞았지만 암달러로 거래된 것이 적지 않아서 미국이 별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양담배를 피우면 2, 30미터 떨어진 데서도 경찰이 담배연기로 구별해 잡았다고 한다.
양키물건장사가 물심검문에 걸리면 유치장에 들어가고 엄청난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한국경찰에 걸리면 사정이라도 하고 돈 봉투라도 찔러주면 피할 수 있었지만 미군 MP에 걸리면 말도 안통하고 꼼짝없이 벌을 받아야 했단다.
우리 건넌방에도 영희라고 부르던 나와 동갑정도인 딸 하나만 키우는 아주머니가 살았는데 그 분은 미군부대 출입증을 가지고 출퇴근을 해서 이런 저런 미제 물품을 가지고 나왔는데 달러만 있으면 PX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역시 문제는, 한국 사람은 미제 물건을 가지고만 있어도 걸리기 때문에 영희 엄마도 종종 한복을 입고 출퇴근을 했다.
영섭이네 소식이 궁금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에 집 앞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흙에 묻힌 반지 하나를 주웠는다.
꼭 구멍가게서 파는 장난감반지 같은데 혹시나 싶어 엄마한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보고는 어딘가 던져 놓으셨다.
그 날 밤 밖에서 들어 온 영섭이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우리 엄마가 장롱위에서 반지를 들고 나가 이것이냐고 하자 펄쩍뛰면서 그게 맞다 고 했다.
영섭이 엄마가 어딘가 갔다 팔아야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어버려 놓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용케도 흙장난 하던 내 손에 잡혔는데 영섭이 엄마는 어떻게 그 반지가 우리 집에 있게 되었는지 많이 의심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직접 자초지종을 잘 설명하고 엄마는 그게 그렇게 비싼 것이 줄도 몰랐다고 하자 오해가 풀리고 그 날 영섭이 엄마는 수박을 한 통 사다 파티를 했다.
그리고 나는 티셔츠 한 장을 얻어 입은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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