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처음 광운전자계산소에서 FACOM230-15 컴퓨터를 구경할 때에는 컴퓨터를 만져볼 수도 없었다. 프로그램을 공부하면서도 키보드는 구경도 못하고 모눈이 인쇄된 Coding Sheet에 프로그램을 연필로 써서 키펀처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주간이 지나면 내가 작성한 프로그램이 펀치카드로 변환되고 프로그램 실행 결과가 라인프린터에 인쇄되어 함께 도착한다. 나는 키보드도 만지지 않고 컴파일을 해 보지도 않고 결과물만 받는데 프로그램에 에러가 있으면 디버그 에러리스트만 잔뜩 인쇄된 인쇄물을 받게 된다. 그 당시는 운전면허 따고 운전대 잡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키보드를 쳐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열 시간 이상씩이나 내 손에는 키보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옆에는 마우스까지 졸졸 따라 다닌다. 한국전쟁 후 미국물이 들어오면서 이 땅의 인기 직업 중 하나가 타이피스트라는 일이었다. 타자기 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었고 기지촌 부평에서의 미군부대 타이피스트는 젊은 여성들의 로망인 시대였다. 60년대 말이 되어서 이 땅에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부터는 컴퓨터 키펀처의 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10여년 후 오명 체신부장관이 PC 천만대 보급이라는 목표를 추진하면서 집집마다 사무실 마다 PC가 생기면서 타이피스트니 키펀처니 하는 직업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물론 아직도 남의 글을 대신 컴퓨터에 입력해 주는 사람이 있지만 직업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80년대 초반 마이크로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직접 키보드를 써야 했으니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 키보드를 엄청 빨리 잘 쳐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먼저 얘기대로 처음엔 다른 사람이 쳐줬고 그 다음 마이크로 컴퓨터에서 직접 칠 때부터는 거의 프로그램만 했는데 BASIC이나 COBOL, CLIPPER 이런 언어들이 모두 영문, 숫자, 특수문자이면서 불과 몇 가지가 안 되는 단어들이다 보니 금새 손에 익숙하여서 대충 안보고 쳐도 잘 되는 것이었다. 키보드 사용법에 의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Windows 시대가 되었고 한글에디터의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그닥 한글문서 작성을 해야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보니 한글자판을 익히는 것도 게을리 하게 되었다. 2002년 부터는 .NET 개발환경을 사용하게 되었고 Visual-Studio 개발 툴은 키보드 못지 않게 마우스로 작업하는 것이 많아서 역시 키보드 사용에 게을러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키보드를 콕콕 찍어 대는 것을[독수리타법]이라고 한다. 나도 처음은 검지만 썻고, 다음에는 검지와 중지, 그리고는 엄지, 검지, 중지.... 하면서 이제는 약지까지 다섯 손가락을 다 쓰지만 아직도 키보드를 대충은 보면서 쳐야 한다. 얼마 전 회사에서 좋은 키보드로 바꾸어 준 것이 감사해서 이참에 제대로 키보드 사용법을 바꿔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따금 꼭 빨이 많이 쳐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이 들어서일까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속도가 키보드 치는 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키보드를 치는 대도 가끔은 키보드를 멈추고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이젠 말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해야 하고 글도 천천히 써야한다. 이젠 말도 글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겠지만 변병하거나 해명하고 반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분에 200자 300자를 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버그 없는 말끔한 프로그램 코드를 치면 좋고, 덕이 되고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말이고 글인가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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